이 글에서는 세 종류의 트랙볼을 다룹니다. 마우스와 비슷한 외형에 볼을 엄지로 조작하는 마우스류, 클릭 버튼이 마우스와 비슷하여 엄지로 조작하고 볼은 가운데 위치한 하이브리드류, 볼이 가운데 위치하고 클릭 버튼도 좌우 대칭으로 존재하는 대칭류1가 있습니다. 알기 쉽게 제품으로 말씀드리면 마우스류는 로지텍 ERGO 시리즈의 트랙볼들, 하이브리드류는 엘레컴 HUGE, 대칭류는 켄싱턴 슬림블레이드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로지텍 ERGO M575S 엘레컴 HUGE 켄싱턴 슬림블레이드 Pro

(다만 저가형 제품에서는 제가 언급한 장점이 무색해지거나, 없던 단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은 중고가 제품군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목차
    1. 마우스류
      1. 장점
      2. 단점
    2. 하이브리드류
      1. 장점
      2. 단점
    3. 대칭형
      1. 장점
      2. 단점
  1. 트랙볼 고를 때 팁

마우스류

로지텍 ERGO M575S

아마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우스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 손목은 쓰지 않는, 정말 순수하게 손목을 보호하고 싶다는 목적만 있다면 자연스레 이 제품군을 선택할 거예요.

장점

  • 입문이 편하다.

    마우스와 거의 동일한 조작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볼로 커서를 움직이는 것만 익숙해지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마우스가 가능한 것은 대부분 가능하다.

    트랙볼을 다루는 손가락이 그냥 마우스를 사용할 때는 쓰지 않는 엄지손가락이기 때문에 조작에 한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솔직히 이걸로 FPS도 가능합니다.

    "그럼 다른 종류들은 할 수 없는 조작이 존재하는 건가요?"라 물으신다면, "네."

  • 휴대가 간편하다.

    보통 이런 종류는 볼의 크기도 작고 보통 마우스보다 살짝 큰 사이즈이기 때문에 들고 다니는데 무리는 없습니다. 또 책상에서의 공간 차지도 가장 적은 편입니다.

단점

  • 엄지손가락에 무리가 간다

    제가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엄지손가락의 뿌리 관절에 무리가 많이 갑니다. 한 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부담하는 데다가 볼을 조작하는 방향이 중력과는 수직이라 더 무리가 가는 것 같습니다.

  • 볼이 작다

    후술하겠지만, 트랙볼은 볼의 크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우스 형태는 볼이 커질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 클릭 시 힘의 방향

    갑자기 심오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실 경험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상상해볼까요? 볼을 조작하려면 엄지를 사용해 바깥에서 안쪽으로 힘이 들어갑니다. 큰 힘은 아니지만 볼과 손가락 사이에 충분히 마찰력을 제공할 정도는 돼야 합니다. 클릭은 검지로 위에서 아래로 합니다. 우리 손은 직각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돼있고, 안쪽으로 힘을 주면 손가락들은 자연스레 만나게 돼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볼과 클릭을 동시에 하면 수직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방향으로 힘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제품을 만들 때 이미 클릭 쪽이 기울어진 채로 디자인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각도는 사람의 손 크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 자꾸 쏠리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편향이 심해지면 각도 차이가 너무 나서 가끔 클릭이 안되는 상황도 나오게 됩니다. 물론 즉시 의식하고 힘 주는 방향을 바꾸게 되지만 묘한 불편함이 있어요.

하이브리드류

엘레컴 HUGE

마우스류 입장에서는 볼의 조작방식을 트랙볼 고유의 것으로 바꿨고, 대칭류 입장에서는 펑션키들을 추가해주고 마우스의 편의성을 차용했습니다. 어중간하기는 하지만 범용성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장점

  • 다양한 기능 버튼들

    사실 이 종류 분류와 직접 연관되는 특성은 아닙니다. 마우스류라도 기능 버튼이 없을 수 있고, 대칭류라도 기능 버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품군의 방향적 특성상 그런 예외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 예외들이 모여서 공통된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 하이브리드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품 수가 적습니다. 엘레컴 말고 제대로된 제품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마우스 휠이 존재한다

    슬슬 황당한 특징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장점입니다. 왜냐면 대칭형들은 우리가 흔히 쓰는 톱니 형태의 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 관절에 부담이 적다

    볼을 여러 손가락을 사용해서 돌리기 때문에 관절에 부담이 갈 일이 없습니다. 또 볼이 수평 방향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손의 무게만으로 마찰력이 생겨 추가적인 힘을 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점

  • 입문하기 어려움

    검지, 중지, 약지를 사용해서 커서를 움직이고 엄지로 클릭하는 이 방식이 마우스에만 익숙하던 사람들에게는 많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사용 초반에는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 손이 아프기도 하고, 드래그는 커녕 대각선으로 커서를 이동하는 것조차 쉽게 못할 수도 있습니다.

  • 클릭 시 힘의 방향

    이번에도 등장한 힘의 방향입니다. 마우스류 때는 볼을 조작하는 방향대로 엄지를 눌러야 했다면, 이번에는 클릭을 하기 위해 그 방향대로 눌러야 합니다. 마우스류에서는 엄지 쪽이 구형(공 모양)이라 상관없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검지 쪽이 구형이고 엄지는 클릭이라 같은 문제가 엄지쪽에서 발생합니다.

  • 사실 아직 볼이 작음

    좌우로 클릭 버튼들이 있고 그것을 움켜쥐며 조작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여전이 볼 크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볼 크기에 관한 내용은 후술.

    이 때문에 발생하는 부차적 귀찮음이 있습니다. 볼 크기가 애매하게 커져서 고정은 단단히 해야 하지만 가볍지는 않은 상태가 됩니다. 트랙볼은 주기적으로 볼을 꺼내서 청소하는 루틴이 필요한데 이 때 볼을 꺼내면서 힘을 좀 써야 합니다.

대칭형

켄싱턴 슬림블레이드 Pro

트랙볼의 끝입니다. 마우스와 가장 거리가 먼 형태이자 가장 트랙볼에만 집중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덧붙여서 이 제품군의 대표주자 슬림블레이드는 전문가들이 애용하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사람들 중 손을 공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는 분이 계시다면 십중팔구 이 제품군을 이용하고 계실 거예요.

장점

  • 대칭

    오른손으로 쓰든 왼손으로 쓰든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종류들은 왼손으로 쓸 수 없습니다.

  • 안정적인 각도

    다른 류는 불완전한 인체공학적 구조 때문에 클릭 각도가 애매했습니다. 그러나 대칭류는 인체공학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안정적인 조작감을 선사합니다. 사실 인체공학 많이 생각했을 거예요 ㅋㅋㅋㅋㅋ 근데 디자인을 보면 진짜 인체공학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 있습니다. 일단 대칭인 것 부터가 그래요.

  • 볼이 큼

    이제 볼 말고는 아무것도 방해될 게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커집니다. 일례로 당구공을 볼 대신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 따로 고정하는 힘이 없어도 무게로 버티는 체급이라 오히려 분리하여 청소하기는 편합니다.

단점

  • 입문 진짜 어려움

    클릭 말고는 전부 마우스랑 다르기 때문에 그냥 새로운 종류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휴대 거의 불가능

    할래야 할 수는 있겠어요. 근데 일단 볼이 커서 무겁고, 분리도 잘 됩니다.

  • 기능 버튼 거의 없음

    있기는 한데 없는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휠클릭용 버튼 자리가 필요하기도 하고, 자연스레 손이 닿는 부분 중 추가 버튼을 넣을 자리는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보통 없더라고요.

  • 휠이 없음

    네. 이들은 마우스에서 드르륵 돌리는 휠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말 심플하게 휠이 없는 경우입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로지텍 구형 트랙볼이 그 예시입니다. 두 번째는 휠 링입니다. 볼이 들어갈 홈 주위로 링이 있어 이것을 돌려 스크롤하는 형식입니다. 대부분의 저가형 혹은 중저가형에서 쓰는 방식입니다. 세 번째는 볼을 옆으로 돌리면 스크롤이 되는 방식입니다. 슬림블레이드가 이 방식을 씁니다.

    각각 단점이 있습니다. 없는 건 그냥 없는 게 단점입니다. 링 방식은 내구도가 좋지 않고 뻑뻑합니다. 옆으로 돌리는 방식은 가끔 볼을 움직이는 각도가 틀어질 경우 의도치 않게 커서 이동을 방해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 인체공학적이지 못함

    마우스도 마찬가지기는 합니다. 손을 수평으로 돌리는 것이 신체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상태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그 부분에서 대칭류는 인체공학적이지 못합니다. 기울어진 대칭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슬림블레이드 한정) 클릭 시 엄지가 닿는 부분이 다름

    다른 종류는 그래도 지문이 있는 부분으로 클릭하게 되지만 얘네들은 손가락의 옆면을 쓰게 됩니다. 여러분이 스페이스바를 누를 때 쓰는 바로 그 부분이요. 이게 처음 쓰면 진짜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사실 지금도 살짝 어색합니다.

트랙볼 고를 때 팁

그 외 제품을 쓰면서 차마 생각 못했지만 의외로 크게 다가왔던 부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 볼 크기

    드디어 나왔습니다. 볼 크기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트랙볼 사용감을 결정하는 80%는 이 볼의 크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볼이 작으면 한 번에 굴릴 수 있는 양이 적어집니다. 그 말은 곧 저감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트랙볼의 대표적인 단점 중 하나가 정확도입니다.2 그런데 저감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볼이 가벼우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이건 마우스의 무게추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마우스가 가벼운데 패드가 뻑뻑하다고 생각해보세요. 뚝 뚝 밀리는 것을 온전히 손의 힘으로 컨트롤해야 합니다. 그런데 트랙볼은 손으로 마찰을 준다던지 하는 행동이 불가능합니다. 볼이 가볍다는 이야기는 곧 볼이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직결됩니다.

  • 청소가 용이한지

    트랙볼은 청소를 정말 자주 해야 합니다. 저도 써 보지는 않았지만 볼마우스와 비슷합니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볼과 본체 사이에 이물질이 낍니다.

    그런데 이 청소가 용이하지 않은 제품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엘레컴이 그랬습니다. 엘레컴의 경우 볼이 들어가는 홈 안에 있는 센서와 나사 구멍이 홈이 파져 있어 사용할수록 그 안에 이물질이 쌓여갔습니다. 기능상 이상은 없었지만 더럽잖아요. 어떤 제품은 또 볼을 빼기가 너무 불편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차피 청소 그거 어쩌다 한 번 하는 건데 하지 마시고 진짜 신중하게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트랙볼은 청소가 일상입니다.

    안산엔 이게 일상이야
1 사실 '근본류'라 부르고 싶었지만 정답을 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렇게 이름지었습니다.
2 대신 장점은 볼을 계속 굴릴 수가 있다는 점이예요. 마우스는 패드 끝에 다다르면 손으로 마우스를 들어올려 반대쪽 끝으로 옮긴 후 다시 끌어야 하지만 트랙볼은 그냥 계속 굴리면 됩니다.